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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니산과 참성단

한반도 가운데 위치한 마니산은 강화도 남서쪽 끝에 있는 "민족의 영산"
이다. 주능선 등마루에 얹힌 바위들이 빼어난데다가 그 앞으로 서해바다가 활짝 열려 있어 아름다운
경치를 만끽할 수 있다.

마니산 꼭대기에는 단군께서 민족만대의 안녕과 복을 빌기위해 단군왕검의 아들 부루에게 단을 쌓게
하고 봄, 가을에 직접 올라 하늘에 제사를 지낸 참성단이 있다.

참성단의 모습은 크게 보면 전정부(前庭部)와 제단부로 이루어져 있다.
전정부는 제단의 앞마당에 해당되는데 돌담으로 처져 있고 제단부는 돌로 쌓아 만든 제단과 계단이
합쳐진 모습이다. 위는 둥글고 아래는 네모난 하원상방(下圓上方)의 형국이다.

매년 개천절 때마다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전국체전의 성화가 칠선녀에 의해 하늘로부터 불을 받아
대회 기간 내내 운동장의 불을 밝힌다.
 

전등사

고구려 소수림왕 11년(381) 아도화상이 창건하여 진종사(眞宗寺)라 하였다가 고려 충렬왕 8년(1282)
에 원비 정화왕비가 옥등을 헌납한 후 전등사라 개칭하였다. 천년고찰 전등사에는 오래된 나녀상의
전설, 불탄 은행나무에 엃힌 전설들이 전해오고 있다.
전등사는 세 아들이 쌓았다고 전해지는 삼랑성(정족산성)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대조루가 일주문의
역할을 하고 있다. 경내에 들어 가면 보물 세가지가 있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단층 팔작집 형태의
대웅보전(보물 제178호)과 병을 치료하는 약사부처를 모신 약사전(보물 179호), 그리고 범종
(보물 393호)이 그것이다.
전등사 동문 옆에는 병인양요를 승리로 이끈 양헌수 장군 승전비가 있다.

 
보문사

석모도에 있는 보문사는 신라 선덕여왕 4년(635) 회정대사가 창건하고 조선순조 12년(1812) 중건한
석굴사원이다. 우리나라 3대 기도사찰 중의 하나로 보문사 석굴안에 석가모니불, 미륵보살 등
나한상을 안치한 마애불이 있다.
석불들은 신라 때 어떤 어부가 고기를 잡다가 그물에 걸린 돌덩이 22개를 꿈속의 스님이 지시한대로
안치한 것이라는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마애석불은 낙가산 중턱 일명 눈썹바위에 조각된 높이 970㎝ 폭 360㎝ 정도의 관음상이다.
 
정수사

마니산 동쪽 기슭에 자리잡고 있는 정수사는 신라 선덕여왕 8년(639) 회정선사가 창건하여 정수사
(淨修寺)라 했던 것을 조선 세종 8년(1426) 함허대사(涵虛大師)가 수축할 당시 사찰 동편에서 맑은
물이 나와 정수사(淨水寺)로 이름을 고쳤다.
정수사는 큰 사찰이라기보다 암자에 가까운 아담한 절로 장엄함을 뽐내야 할 대웅전에는 서민적 공간
요소라 할 수 있는 툇마루가 붙어 있다.
문화재 관람 측면에서 본다면 이 사찰에서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는 대웅전(보물 제161호) 문창살이다. 모란과 장미가 활짝 핀 모습을 청ㆍ황ㆍ홍ㆍ녹 등 4색으로 구성돼 있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창살로 꼽힌다.
 

용흥궁

용흥궁(龍興宮)은 '강화도령'으로 널리 알려진 조선 제25대 철종이 왕으로 등극하기 전에 살던 집이다. 후에 왕좌에 오름으로써 그 곳은 '용이 일어난 궁'이라는 이름이 붙게 된 것이다.
원래 초가 삼간의 볼품 없던 집이었으나 1853년(철종4) 강화 유수 정기세가 주변의 집들을 사들여
기와집으로 확대 개축하였다.
정면 7칸, 측면 2칸의 안채와 정면 6칸, 측면 2칸의 바깥채와 그 행랑채 등을 지었다. 철종이 살던
그 자리를 확인하는 '철종조잠저구기(哲宗朝潛邸舊基) 라고 새겨진 비석과 비각이 세워져 있다.

 
강화고인돌(강화지석묘)

고인돌은 우리나라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무덤 중의 하나이다.고려산 주변에는 강화지석묘
(사적 제137호)를 비롯해 내가지석묘, 강화대산리지석묘, 강화부근리점골지석묘 등 120여기가
집중돼 있다.
일명 탁자식이라 부르는 북방식 고인돌인 강화지석묘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고인돌로 전체의 높이가
어른 키보다 높은 2.6m이다. 덮개돌은 길이 6.5m, 넓이 5.2m의 둥글고 넓적한 바위로 그 아래에는
두 개의 굄돌이 받히고 있다.
강화고인돌은 2000년 호주 케언즈에서 열린 제24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중국의 만리장성이나 이집트의 피라밋같이 역사적ㆍ과학적ㆍ예술적 관점에서 세계적인
가치를 지닌 인류공동의 귀중한 문화유산으로 인정받게 된 것이다


고려궁지

고려궁지는 몽골의 침입이 있자 고려가 1232년 강화도로 천도해 항쟁에 들어가면서 지은 궁궐이다.
승평문(昇平門)이라는 대문을 지나면 궁터가 나오는데 원래는 넓은 터를 차지하고 있었으나 개성으로
돌아간 후 궁궐과 성의 대부분이 불타 없어져 흔적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오히려 그 곳에서는 조선시대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고려가 떠난 후 강화유수부 청사가 들어섰기
때문에 동헌과 이방청 등 관아건물을 볼 수 있다.

 

강화산성

1232년 고려가 몽골의 2차 침입에 대항하기 위하여 착공해서 천도 2년 후인 1234년부터 쌓기 시작한
토성이나 1270년 개경으로 다시 천도한 후 몽골의 요청으로 헐어 버렸다.
조선전기에 규모를 축소하여 다시 축성하였으나 병자호란 때 대부분 파괴되고 1677년 강화유수 허질이
고려시대의 내성 규모로 전면을 돌로 후면을 흙으로 개축하여 길이가 7,122m에 이르게 되었다.
강화산성에는 동서남북의 4개소에 성문이 있었는데 동문루는 '망한루' 서문루는 '첨화루' 남문루는
'안파루' 북문루는 '진송루'로 이름을 붙였다. 동문쪽은 강화 시가지가 되면서 성과 문루가 없어졌던
것을 현재 복원 중에 있다.

 

초지진

염하를 사이에 두고 김포시 대명리와 마주보고 있는 초지진은 1866년 프랑스 극동함대 및 1871년 미국
아세아 함대의 첫 상륙지였다. 1875년
8월 21일 일본 군함 운양호가 강화도 앞에 접근 했을 때는 조선 수비군의 화포의 불이 맹렬하게 뿜어진
격전지이다.
돈대 중앙에는 그 때 쏘았음직한 대포 1문이 전시돼 있고 돈대 옆에 외롭게 서있는 노송 한 가운데와
석축 곳곳에는 당시의 포탄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어 아직도 그 때의 상흔을 지우지 못하고 있다.

 

광성보

광성보는 신미양요의 가장 격렬했던 격전지로서 1871년 4월 미국의 로저스가 아세아 함대를 이끌고
침략한 곳이다. 1,230명 병력의 미 상륙부대는 초지진, 덕진진을 점령한 후 광성보에 이르러 백병전을
전개하였다. 조선군 지휘관 어재연 장군이하 전 용사가 무기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한 사람도 물러서지
않고 용감하게 싸우고 장렬히 순국하였다.
광성보 내에는 9명의 무명용사의 분묘인 신미순의총과 어재연 장군 형제의 높은 뜻을 기린 쌍충비각을
비롯해 안해루와 광성돈대, 손돌목돈대, 용두돈대가 있다.

 

덕진진

덕진진은 광성보와 초지진의 중간에 위치하여 양 요새를 연결시켜 주고 김포 쪽에서 튀어나온 덕포진
포대와 마주 보며 염하 해협의 길목을 지키는 강화 제1의 요충지이다. 1866년 병인 양요 때 양헌수
장군의 부대가 밤에 이 진을 통하여 정족산성에 들어가 적을 격파했고 1871년 신미양요 때 미국의
아세아함대와 치열한 포격전을 전개해 미 함대에 피해를 입히기도 했다.
덕진문루인 공해루(控海樓)를 돌아 아래쪽으로 내려가면 15개 포문이 바다를 향해 열려 있는
남장포대가 나온다.

 

강화역사관

강화여행은 강화역사관에서 출발한다. 고려 때의 항몽 관련 유적부터 조선말기의 운양호 사건,
신미양요 등 우리역사와 관련된 사료와 유물들이 전시돼 있는 4개의 전시실을 다 돌고 나오면 일단
강화 역사에 대한 브리핑을 받는 격이 된다.
역사관 2층으로 오르는 계단의 벽에는 '帥(수)'자가 커다랗게 새겨진 황토색 깃발이 걸려있다.
이 깃발은 모조품이며 진짜는 미국 애나폴리스 해군사관학교 박물관에 보존돼 있다.
역사관 앞에는 400년 된 5m 짜리 탱자나무가 있다. 우리나라(남한)에서 가장 북쪽에 있는 탱자나무로
천연기념물 제 78호이다.

 

갑곶돈대

역사관을 나와 바다 쪽으로 몇 발짝 내디디면 갑곶돈대가 나온다. 김포 땅이 바로 앞에 보이는 갑곶은
옛 강화의 출입문이자 요새였다. 고려가 원종 11년(1270)까지 도읍을 강화도로 옳긴 후 몽고와
줄기차게 싸울 때의 강화도 외성으로 강화해협을 지키는 중요한 요새였다.
또한 고종 3년(1866) 당시 불랑기국(佛狼機國)이라고 불리던 프랑스의 극동함대가 600여명의 병력을
이끌고 들어와 개항을 요구하며 닻을 내린 곳으로 19세기 말 외세 침략전쟁의 도화선에 불이 붙은
곳이다.



함허동천

골짜기마다 얼음 바람이 솔솔 부는 함허동천 야영장은 마니산 줄기 동쪽으로 뻗어 내린 능선을 따라
이뤄져 있다. 옛날 이곳을 찾은 함허대사가 사바세계의 때가 묻지 않아 수도자가 가히 삼매경에
들 수 있는 곳이라 해서 '함허동천' 이란 이름을 얻었다.
입구에서부터 정상에 이르기까지 길게 늘어진 계곡을 따라 모두 29개소의 야영장이 곳곳에 마련돼
있고 다목적광장과 놀이마당, 체력단련장 등 의 시설이 있다. 야영장에서 마니산 정상과 정수사
쪽으로 향하는 등산로도 잘 닦여있다.
산과 물이 묘한 조화를 이루고 빼어난 경치를 보며 흐르는 물에 발을 담가두고 앉아 있으면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함허동천은 최고의 계곡이다.

 

석모도

강화군 삼산면에 속한 섬으로 강화도의 서쪽바다의 길게 붙어 있다. 해명산, 상봉산, 상주산의 3개
산이 있어 삼산면이란 이름을 얻었다. 석모도는 산과 바다, 그리고 갯마을이 조화를 이루며 멋진
풍광을 보여주는 곳으로 우리나라 3대 관음도량 중 하나인 보문사가 있다.
어류정항 쪽으로 가면 염전, 갯벌, 포구 등이 차례로 나타나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이 밖에 장구너머포구, 삼량염전, 어류정낚시터 등도 석모도에서 빼놓을 수 없는 관광지이다.